조선시대 이모저모 (54) 썸네일형 리스트형 [조선 역사 사건] 무오사화(1498년)와 사림의 등장: 조선 정치 변화를 만든 사건 조선시대 사화의 시작, 무오사화(1498)의 배경과 전개조선시대는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고, 유교적 지식과 소양을 갖춘 유생들이 관료로 등용되었습니다. 이들은 크게 훈구파와 사림파라는 두 개의 정치 세력으로 나뉘어 권력을 다투게 됩니다. 무오사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두 세력의 탄생 배경과 차이점을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1. 훈구파와 사림파: 권력을 둘러싼 두 세력의 탄생훈구파는 세조의 왕위 찬탈을 도왔던 공신 세력이었습니다. 이들은 막대한 경제적 이권과 권력을 소유하며 조선 초기의 정치를 주도했습니다. 이들은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세력의 기반이 튼튼했습니다. 개국 공신, 왕실의 친인척, 재상 가문 등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죠.반면, 사림파는 지방 중소 지주 출신의 신진 사대부들이었습니다.. [조선 정치 사건] 1461년 정축지변, 세조 집권기에 일어난 또 하나의 권력 다툼 정축지변이란 무엇인가?조선 전기 정치사는 끊임없는 권력 다툼과 정변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1461년 정축지변은 세조 집권기에 일어난 대표적인 정치 사건으로 꼽힌다. 세조는 1453년 계유정난을 통해 집권했지만, 그의 권력이 공고해지기까지는 수많은 정치적 도전과 위기를 겪어야 했다. 정축지변은 바로 그 과정에서 발생한 권력 투쟁으로, 조선 초기 권력 구조의 불안정성을 잘 보여준다.세조 집권의 배경1455년, 수양대군은 어린 단종을 대신해 왕위에 올라 세조가 되었다. 세조는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기 위해 각종 제도 개혁을 단행하고, 군사적 기반을 강화했다. 하지만 세조의 즉위 과정은 합법적이라기보다 ‘찬탈’의 성격이 강했기에 반발 세력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단종 복위를 도모하는 세력이나 권력을.. [조선 역사 사건] 1453년 계유정난, 수양대군 세조가 권력을 잡다 계유정난이란 무엇인가?조선 전기 정치사를 흔든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가 바로 1453년 계유정난이다. 계유정난은 단종 집권 초기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일으킨 정치적 정변이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권력 다툼이 아니라 조선의 권력 구조, 왕위 계승 문제, 그리고 사림과 훈구의 갈등이 교차한 역사적 분수령이었다.단종 즉위와 불안정한 정치 기반1452년 문종이 급서하면서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당시 단종은 겨우 12세로 국정을 직접 운영하기 어려웠다. 대신들의 협력과 외척, 그리고 왕실 종친 세력 간의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특히 김종서와 황보인 같은 대신들은 어린 국왕을 보필하며 국정을 운영했지만, 이는 곧 수양대군 세력과의 충돌로 이어졌다.수양대군의 야심과 준비수양대군.. [세종대왕 사건] 1430년대 조선을 뒤흔든 화약고 폭발 참사 세종대왕 시대의 찬란함 속 사건세종대왕 하면 대부분 훈민정음 창제와 과학기술 발전, 백성을 위한 애민 정치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의 치세에도 위기와 재난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430년대 화약고 폭발 사건이다.이 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당시 조선의 군사 체제와 수도 안전 관리의 허술함을 보여준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록된다.조선 전기 화약의 의미고려 말 최무선이 화약 제조법을 전래한 이후, 조선은 화포와 총통을 적극적으로 개발했다. 세종대왕 시기에는 북방 여진과 남해안 왜구에 대비하기 위해 화약 생산이 크게 늘었고, 수도 한양에도 대규모 화약고가 설치되었다.하지만 화약은 극도로 위험한 물질이었다. 조금만 관리가 소홀해도 불꽃이나 습기로 인해 폭발이 일어날 수 있었다. 1430년대 화약고 폭.. [조선 태종 개혁] 사병 혁파로 이룬 군권 장악과 왕권 강화 고려에서 이어진 사병 문제조선 초기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사병(私兵)**이었다. 고려 말기 권문세족과 무장 세력은 사병을 거느리며 사실상 국가 권력과 맞먹는 힘을 행사했다. 왕실조차 이들의 군사력에 의존해야 했고, 왕권은 무력 앞에서 흔들리기 일쑤였다.위화도 회군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 역시 사실은 사병을 기반으로 성장한 인물이었다. 조선 건국 과정에서 공신과 무장들이 거느린 사병은 큰 역할을 했지만, 역설적으로 이들이 그대로 존재하는 한 조선의 왕권은 안정될 수 없었다. 왕조가 교체되었음에도 고려의 폐단이 그대로 이어진 셈이다.태종의 결단, 사병 혁파태조 이성계는 공신 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사병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이 숙제를 이어받은 인물이 태종 이방원이었다.태종은 즉.. [조선 건국 비사] 공양왕 폐위와 정도전의 개국 공신 숙청 이야기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의 퇴장조선 건국을 이야기할 때 흔히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새로운 왕조의 개국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의 폐위라는 역사적 사건이 자리한다. 이는 단순한 군주 교체가 아니라 고려 왕조 자체의 공식적인 종말을 알린 사건이었다.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실권을 쥔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는 왕실의 권위를 무너뜨렸다. 우왕과 창왕이 잇따라 폐위되고, 명맥을 잇는 상징적 존재로 공양왕이 즉위했지만 권력은 없었다. 모든 국정은 이미 이성계와 정도전 같은 신흥 세력의 손에 들어갔고, 공양왕은 허수아비 군주에 불과했다. 결국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즉위하면서 공양왕은 퇴위했고 고려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정도전의 권력 장악과 공신 숙청새 왕조.. 이전 1 ··· 4 5 6 7 다음